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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8일 토요일

전태일 평전 (2 - 누가 참된 현실주의자인가)


조영래, <전태일 평전>, p.165-166 에서.

 
인간의 존엄을 버리지 않고 인간다운 대접을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 바보인가? 노예로서의 고통과 굴욕으로 가득 찬 지루한 나날을, 아무런 의의도 보람도 기쁨도 없는 껍데기의 삶을 애걸하며 또 애걸하며 비루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보인가? 오늘의 현실이 절대로 변화될 수 없는 영구불변한 현실이라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약은' 자들이 참된 현실주의자는 아니다. 체념하고 굴종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일 수는 없다. 삭막한 겨울 벌판의 나무둥치 속에서 내일 화사하게 피어날 꽃잎을 바라보고 오늘의 꿈이 내일의 현실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고난의 길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현실주의자인 것이다.


 

전태일 평전 (1 - 누가 바보인가)


조영래, <전태일 평전>, p.162-163에서..
누가 바보이며 누가 바보가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 '똑똑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뜻하는가? 남의 등을 밟고 올라서는 사람, 남의 피땀의 성과를 가로채는 사람, 남을 속이며 남으로부터 절대로 속지 않는 사람,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남에게 손해를 끼치며 남으로부터는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 사람, 그리하여 돈을 벌든지 권력을 잡든지 하여간에 '출세'를 해서 세상 사람들의 찬탄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명예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이른바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들이다.
이런 '똑똑한 사람' 말고 또 한 부류의 '약은 사람', '현명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있다. 그들은 '현실과 타협'할 줄 알고 '현실에 적응'할 줄 아는, 이른바 처세에 능한 사람들이다. 강자에게 절대로 저항하지 아니하고 어떤 부당한 취급을 당하더라도 고분고분 고개를 숙이고 받아들이며, 반대로 약자 앞에서는 허리를 뻣뻣이 펴고 허시침을 한다는 것이 그들의 처세 철학 제1조이다. 그들의 사전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나 강한 자에 대한 저항이라는 말이 없다. 일제 36년의 억압과 지배의 현실, 해방 이후의 정치적 격동, 그리고 6.25의 혼란을 몸으로 겪으면서 살아남았던 기성세대는 이러한 비굴한 처세철학을 뼛속까지 익힌 '현명한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세상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잘난 사람'이 될 것까지는 기대할 수 없어도 최소한 이러한 '약은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고 그렇게 가르친다. 그뿐인가? 강자들이 판을 치는 모든 사회기구가 한결같이 새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는 것은 '적응', '타협', '겸손', '순종', '온건' 등등의 '미덕'이다.